이서장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대사헌, 형조참판, 행첨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자충(子忠)
시호
양간(襄簡)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23년(세종 5)
사망 연도
1484년(성종 15)
본관
전의(全義, 지금의 충청남도 연기)
주요 관직
형조좌랑|대사헌|형조참판|행첨지중추부사
관련 사건
이시애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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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대사헌, 형조참판, 행첨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자충(子忠). 이구직(李丘直)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정간(李貞幹)이고, 아버지는 한성부윤(漢城府尹) 이사관(李士寬)이다. 어머니는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한상경(韓尙敬)의 딸이며, 부인은 군사(君事, 군수) 송처공(宋處恭)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문음으로 출사(出仕)하고, 1455년(세조 1) 녹사(錄事)로서 원종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1457년(세조 3) 녹사로서 친시문과에 정과로 급제하고 종부시주부(宗簿寺注簿)에 제수되었다.

이후 1466년(세조 12)까지 형조좌랑(刑曹佐郞),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 병조의 좌랑과 정랑, 황해도경차관(黃海道敬差官), 사예(司藝), 내섬시소윤(內贍寺少尹), 검상(檢詳) 등을 역임하였다.

1467년 사인(舍人) 재직 중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이 난의 토벌을 총지휘하는 함경·강원·평안·황해 4도의 병마도총사(兵馬都摠使) 구성군(龜城君) 이준(李浚)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선임되었다.

같은 해 이 일에 기여한 공으로 우선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오르면서 행대호군(行大護軍)에 제수되었으며, 다시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책록되면서 형조참판에 승직되었다.

1467년 함흥부윤(咸興府尹)으로 파견되고, 이듬해 함길북도관찰사에 승직되었다. 1469년(예종 1) 함길도의 남도와 북도를 통합함에 따라 함길도관찰사에 개수되고, 같은 해 전성군(全城君)으로 중앙으로 돌아왔다. 1470년(성종 1) 경상도관찰사로 다시 파견되었다.

이후 성종대를 통해 한성부 좌윤(左尹), 대사헌, 이조와 호조의 참판(參判), 행첨지중추부사(行僉知中樞府事) 등을 역임했으며, 동지중추부사 재직 중 졸하였다. 시호는 양간(襄簡)이다. 묘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廣灘面) 마장원(馬場原)에 있다.

참고문헌

『세조실록(世祖實錄)』
『예종실록(睿宗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전의이씨족보(全義李氏族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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