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대사헌, 형조참판, 행첨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후 1466년(세조 12)까지 형조좌랑(刑曹佐郞),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 병조의 좌랑과 정랑, 황해도경차관(黃海道敬差官), 사예(司藝), 내섬시소윤(內贍寺少尹), 검상(檢詳) 등을 역임하였다.
1467년 사인(舍人) 재직 중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이 난의 토벌을 총지휘하는 함경·강원·평안·황해 4도의 병마도총사(兵馬都摠使) 구성군(龜城君) 이준(李浚)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선임되었다.
같은 해 이 일에 기여한 공으로 우선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오르면서 행대호군(行大護軍)에 제수되었으며, 다시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책록되면서 형조참판에 승직되었다.
1467년 함흥부윤(咸興府尹)으로 파견되고, 이듬해 함길북도관찰사에 승직되었다. 1469년(예종 1) 함길도의 남도와 북도를 통합함에 따라 함길도관찰사에 개수되고, 같은 해 전성군(全城君)으로 중앙으로 돌아왔다. 1470년(성종 1) 경상도관찰사로 다시 파견되었다.
이후 성종대를 통해 한성부 좌윤(左尹), 대사헌, 이조와 호조의 참판(參判), 행첨지중추부사(行僉知中樞府事) 등을 역임했으며, 동지중추부사 재직 중 졸하였다. 시호는 양간(襄簡)이다. 묘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廣灘面) 마장원(馬場原)에 있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世祖實錄)』
- 『예종실록(睿宗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전의이씨족보(全義李氏族譜)』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