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정종의 아들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의 손자(松林君 李孝昌의 제2자)이다.
처음 안현수(安賢守, 守는정4품)가 되었으나 후일 공신이 되면서 안현군(安賢君: 君은 종2품 이상)에 책봉되었다. 종실로서 연산군을 유흥으로 이끌며 총애를 받았다.
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반정에 참여한 처남 심순경(沈順徑)에게 구명을 호소, 박원종(朴元宗)에게 청을 넣어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에 녹훈되었다(『연려실기술』권6 燕山朝 丙寅靖國 中宗推戴條의 寄齋雜錄 기사에 의거함, 그런데 덕천군파 족보에는 부인이 平山 申希沛의 女와 義城 金熙達의 女로 되어 있을 뿐, 심순경의 父 沈澣의 女는 나오지 않음). 1513년(중종 8) 집을 짓기 위해 공한지에 길을 내려다가, 사간원(司諫院)으로부터 광패(狂悖)하다는 지적과 종친의 권세를 믿고 발호한다는 탄핵을 받았으나 왕의 비호로 무사하였다.
1519년 대사헌 조광조(趙光祖)의 건의로 위훈삭제(僞勳削除)가 단행될 때 이성동 역시 남록자(濫錄者)라 하여 공신녹권을 빼앗겼으나, 기묘사화 후 사림이 몰려나자 복작(復爵)되었다. 1539년의 공신위로연에 참여해 왕으로부터 술과 어린 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