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경삼(景三), 호는 입암(笠巖). 영의정 이탁(李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해수(李海壽)이다. 아버지는 첨지(僉知) 이권(李勸)이며, 어머니는 조윤(曹胤)의 딸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광해군 때에 성균관유생으로 정조(鄭造)·윤인(尹訒)·이위경(李偉卿) 등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시해하려던 사건이 발생하자, 이안진(李安眞) 등 360여명의 성균관유생들과 궁궐 앞에 엎드려 음모자의 처벌을 강력히 상소하였으나 노한 왕에게 미움을 사 고향에 은퇴하였다.
1623년(인조 1) 개시문과(改試文科)에 갑과로 급제한 뒤, 검열을 거쳐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 때에는 사관으로 왕을 공주에 호종하였다.
그 뒤 헌납·부수찬·지평·수찬·교리·장령 등을 역임하고, 1627년 정묘호란 때 후금과의 화약을 반대하다가 뒤에 강화가 이루어지자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1633년 사간으로 기용되어 집의를 거쳐, 1638년 동부승지를 지냈으며 10여년간 청환직(淸宦職)만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