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신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지평, 수찬, 동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경삼(景三)
  • 입암(笠巖)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이괄의 난|정묘호란
  • 본관전의(全義, 지금의 충청남도 연기)
  • 사망 연도1651년(효종 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부수찬|지평|수찬|동부승지
  • 출생 연도1580년(선조 1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유병용 (강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이성신 글씨 미디어 정보

이성신 글씨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지평, 수찬, 동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경삼(景三), 호는 입암(笠巖). 영의정 이탁(李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해수(李海壽)이다. 아버지는 첨지(僉知) 이권(李勸)이며, 어머니는 조윤(曹胤)의 딸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광해군 때에 성균관유생으로 정조(鄭造)·윤인(尹訒)·이위경(李偉卿) 등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시해하려던 사건이 발생하자, 이안진(李安眞) 등 360여명의 성균관유생들과 궁궐 앞에 엎드려 음모자의 처벌을 강력히 상소하였으나 노한 왕에게 미움을 사 고향에 은퇴하였다.

1623년(인조 1) 개시문과(改試文科)에 갑과로 급제한 뒤, 검열을 거쳐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 때에는 사관으로 왕을 공주에 호종하였다.

그 뒤 헌납·부수찬·지평·수찬·교리·장령 등을 역임하고, 1627년 정묘호란 때 후금과의 화약을 반대하다가 뒤에 강화가 이루어지자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1633년 사간으로 기용되어 집의를 거쳐, 1638년 동부승지를 지냈으며 10여년간 청환직(淸宦職)만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