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전기 정국공신 4등에 책록된 공신.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 해 사간원사간이 되어 당시의 권신 유자광(柳子光)을 탄핵해 귀양보내고, 1510년(중종 5)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병조참지가 되었다. 뒤이어 승정원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춘추관수찬관을 지냈으며, 밀양부사로 부임해 토호들의 작폐를 엄금해 칭송을 받았다.
이어 장례원판결사·강원도관찰사·병조참의·우부승지를 거쳐 1518년 가선대부(嘉善大夫)의 품계로 승진, 함안군(咸安君)에 봉해지고, 충청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이 때 충청·경상도 세곡(稅穀)의 집산지인 충주에 창고가 없어 노적된 곡식의 관리와 수송에 막대한 지장이 있자, 경상도관찰사 김안국(金安國)과 의논, 충주 가흥창(可興倉) 건물을 축조하였다.
그 해 말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나, 앞서 가흥창 설립 당시 손해를 입은 상인들의 모함으로 상호군으로 물러났다. 1519년 판결사로 서용되고, 뒤이어 경상좌병사·한성부우윤 겸 도총부부총관·호조참판을 거쳐 다시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는데 과로로 순직하였다.
효성이 뛰어나고 청렴결백해 일찍이 중국 사신으로 다녀올 때 요동(遼東)에 이르러 일행이 사사로이 무역한 물건들을 적발, 소각하였다. 시호는 양간(襄簡)이다.
참고문헌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모재집(慕齋集)』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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