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한성부판윤, 호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 한성부판윤·호조판서를 거쳐, 1496년(연산군 2) 순변사로 여진족의 귀순처리와 회유책의 강구를 위하여 북방에 파견되었다. 1497년 이조판서에 임명되고, 이듬해 무오사화 때 김종직(金宗直) 및 그 제자를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어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거쳐 예조판서·지경연사(知經筵事)를 겸임하였다. 1503년 인정전에서 열린 양로연(養老宴)에 참석, 어사주를 회배(回盃)할 때 어의(御衣)에 술을 엎지른 실수로 연산군의 분노를 사서 무안에 부처되었다가 다시 온성·평해에 이배되었다.
이듬해 갑자사화 때 연산군의 생모 윤비(尹妃)를 폐위할 때 극간하지 않았고, 이어 형방승지로서 윤비에게 사약을 전하였다 하여 다시 거제에 이배되던 중 곤양군 양포역(良浦驛)에서 자살의 명을 받고 목매어 자결하였다. 뒤에 우의정의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동고유고(東皐遺稿)』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대동기문(大東奇聞)』
- 『대동야승(大東野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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