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충청감사,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07년(숙종 33) 시독관(侍讀官)이 되어 붕당의 폐해를 진달하고 임금이 건극(建極: 왕이 천하의 근본도리를 세우고 다스림)의 도리로 탕평(湯平)케 할 것을 청하였다. 또 당시 대신들의 집과 사치하는 폐단을 지적하였다.
1710년에 장인 유상운이 졸하자, 특별히 관이 하사되었는데, 누차 이를 거절하고 돌려 보냈다가 이 때문에 혐의를 받기도 하였다. 그 뒤 지평·겸사서·헌납·겸필선·집의·사인(舍人)·사간 등을 거쳐 부응교가 되었다.
이 때 북한산성(北漢山城) 축성 문제가 논의되었는데, 축성 자체는 좋으나 성을 쌓은 뒤에 도성을 제대로 지킬 수 없다면 계책이 못된다고 하여 반대 의견을 내놓기도 하였다.
이어 승지·개성유수·대사간·충청감사·대사헌·도승지·경기감사를 거쳐 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724년(영조 즉위년)에는 경종의 국장도감당상(國葬都監堂上)이 되었다.
이 때 김일경(金一鏡)이 애책문(哀冊文: 제왕이나 后妃의 승하를 슬퍼하여 지은 글)을 지었는데, 이 내용 중에 경종의 승하 원인과 관계된 것이 문제가 되어 옥사(獄事)가 일어나자, 이에 적극 비호하다가 삭탈관작(削奪官爵: 관직을 빼앗김)되고 문외출송(門外黜送: 4대문 밖으로 쫓겨남.) 당해 유배지에서 죽었다.
참고문헌
- 『국조방목(國朝榜目)』
- 『숙종실록(肅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당의통략(黨議通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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