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진주목사, 예조참의,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공주로 인조를 호종했으며, 환도한 뒤에는 전란으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절용애민(節用愛民)의 정치를 펼 것을 진언하였다. 그 뒤 다시 수찬 · 정언 · 교리 등의 문관 요직에 있으면서 상소나 혹은 왕을 모신 자리에서 정사와 왕실의 잘못을 지적해 때로는 왕의 비위를 거슬리기도 하였다.
1626년 수찬으로서 중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왕을 모신 자리에서 내수사를 파해 국가 공용에 보탬이 되도록 주청하였다. 1632년 신진 유신들과 함께 인조의 사친(私親)인 정원군(定遠君)의 왕호추숭(王號追崇)을 반대했다가 파직당하기도 하였다.
그 뒤 다시 등용되어 충원현감 · 진주목사 · 예조참의 등의 내외 관직을 역임하였다. 1643년 왕세자가 청나라 심양(瀋陽)에 볼모로 갈 때 세자우부빈객 동지중추부사로 호종해 보좌했으며, 이듬해 귀국해 형조참판으로 비변사당상을 겸임하였다. 아버지 이정구, 형 이명한(李明漢)과 함께 3소(三蘇)라 일컬어졌다. 뒤에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시문에 능하고 글씨에 조예가 깊었으며, 20여 년간 관계에서 활동하면서 『동사록(東槎錄)』 · 『진양록(晉陽錄)』 · 『심관록(瀋館錄)』 · 『방축록(放逐錄)』 등의 시를 남겼다. 시문집으로는 『현주집』 7권이 있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월사집(月沙集)』
- 『송자대전(宋子大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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