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충청북도의 동북부지역으로 남으로 뻗어 내린 삼태산 줄기의 남쪽 중턱쯤(해발 312m)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1986년에 단양 매포중학교의 국사담당교사 임광훈의 제보로 충북대학교박물관의 조사로 발견하게 되었다. 1986 · 1988년에 두 차례에 걸쳐 충북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동굴의 전체 길이는 약 150m에 달하지만 발굴조사는 입구에서부터 20m지점까지만 진행되었다. 층위는 3개의 퇴적층과 5개의 석회마루층으로 구분되었다. 그 중 제2퇴적층(3층)에서 사람뼈와 석기 · 뼈연모 등의 문화유물과 풍부한 동물화석이 집중적으로 출토되어, 이 층이 주된 문화층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석기로는 대부분이 석회석 낙반석을 이용해 간단한 떼기만을 베풀어 만든 주먹찌르개 · 자르개 · 긁개 · 격지 등이다. 뼈연모로는 찌르개 · 뚜르개 · 긁개 · 홈날 · 자르개 · 톱니날 등이 있어 당시의 생활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얻었다.
사람뼈는 발목뼈 1점, 발등뼈 1점, 발가락뼈 3점이 발견되었다. 자료가 적어 체질적 특징을 밝히기는 어려우나 형태와 크기에서 남자 어른으로 판단된다.
동물뼈의 출토로 짧은 꼬리원숭이 1마리, 사슴 46마리, 곰 5마리, 호랑이 2마리, 시라소니 2마리, 오소리 6마리, 담비 1마리, 새 1마리 등 64마리의 최소 마리수가 산출되었다.
꽃가루의 분석으로 2강 3아강 14목 17과 14속의 425개 꽃가루가 확인되었다. 숯분석에서 3과 5속이 밝혀졌다.
절대연대측정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동물상으로 볼 때, 구낭굴 3층은 후기 홍적세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