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우산은 3개의 동굴로 이루어졌다. 발굴팀이 1975년 이후 지속적으로 조사하였다. 30세 가량의 완전한 사람의 머리뼈와 몸뼈가 나왔으며, 당시의 자연환경을 알 수 있는 짐승화석과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는 석기·뼈연모 등을 출토하였다.
위층(A지점 : 3·4층, C지점 : 1·2·3층)에서는 털코뿔이(Coelodonta antiqueitas)·불곰(Ursus arctos)·꽃사슴(Pseudaxis sp.)·노루(Capreolus sp.)·고라니(Hydropotes sp.)·땅쥐(Myospalax sp.)·멧토끼(Lepus sp.)·오소리(Meles cf. leucurus) 등의 짐승화석이 발견되어 주목된다.
아래층(A지점 : 5·6층, C지점 : 4·5·6층)에서는 26종의 짐승화석을 출토하였는데, 사멸종이 많은 편이다. 연구자는 발굴된 늑대(Canis lupus var.)·호랑이(Felis tigris)·불곰(Ursus arctos) 등의 짐승으로 보아 무성한 산림지대였고, 족제비(Mustela sibirica)·이리(Cuon alpinus var. antique) 등 육식동물로 보아 당시 이곳을 관목이 우거진 곳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삼문말(三門馬, Equus sanmenensis)·영양(Gazella sp.)·들소(Bison sp.)로 보아 넓은 초원지대이며, 해리(Trogontherium sp.)로 보아 물가의 환경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아래층에서 직접떼기에 의한 몸돌과 격지를 출토하였고, 석기의 유형으로는 긁개가 많고 찌르개도 있었다. 석기는 외날로 되어 있어 중국 구석기시대의 이른 시기의 특징을 가진다. 반달모양 밀개는 주구점(周口店)의 8·9층과 비교되며, 늦게는 합자동·수구동·부린 유적과 비슷한 유형의 석기로 보인다. 또한 골수를 먹기 위해 떼어진 뼈가 있고, 사용흔적이 있는 뼈연모 등이 있다.
절대연대측정으로 A지점 4층은 175,000±19,000∼17,000년 전으로로 나왔으며, 6층은 263,000±30,000년 전의 평균값이 측정치이다.
금우산인의 중요성은 중기 홍적세 인류가 단지 불을 사용했다는 것 이상으로 불을 통제하고 관리할 능력도 갖추었다는 점이다. 뇌의 용량도 증가하여 1390cc에 달하여 같은 시기의 북경원인보다 200cc 많아 이미 현대인의 뇌용량에 접근하고 있다. 앞 입술부위 뒷부분의 축소 정도는 북경원인에 비하여 뚜렷하며 상당부분이 현 몽골인종(蒙古人種; Mongoloid) 특징과 비슷하여 이들을 중국 초기 슬기사람(Homo spiens)로 부른다.
이 유적은 현대인과 매우 유사한 사람의 뼈를 출토하였다. 이를 금우산인(金牛山人)이라고 하는데, 화석은 거의 완전한 머리뼈와 등뼈, 갈비뼈, 뒷팔뼈, 손발뼈 등이다. 금우산인은 인류진화상 곧선사람(Home erectus)에서 슬기사람으로의 진화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우라늄동위원소에 의한 연대 측정에서 164,000∼314,000년 전으로 나왔다.
금우산인은 28만년 전에 활동했던 호모 사피엔스로 확인되었다. 이것은, 모든 현생인류가 20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하는 한 여성, 즉 '미토콘드리아 이브(Mitochondria Eve)'의 후예라는 '이브학설(아프리카 가설)'에 대한 반박의 자료로 사용된다.
아시아대륙 동부에 있는 금우산 유적의 지리적 위치가 아프리카와 너무 멀다는 점, 금우산인의 활동시기는 28만년 전으로 미토콘드리아 이브보다 8만년이나 앞선다는 점, 금우산인이 불씨 관리에 능숙했다는 점 등으로 보아 금우산인이 더 일찍 초기 호모 사피엔스 단계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많은 짐승화석과 함께 사람뼈·석기 등을 출토한 것은 북경 주구점유적 이후 처음있는 발굴이어서 학계는 크게 주목하고 있다. 우리와도 지리적으로 연결하여 상원 검은모루동굴, 청원 두루봉동굴과도 비교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