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전기 지중추부사, 형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67년 이시애(李施愛)가 함길도에서 난을 일으키자 진북장군(鎭北將軍) 강순(康純) 휘하의 맹비장(猛裨將)으로서 공을 세워 절충장군에 특진되고, 난이 평정된 뒤 적개공신(敵愾功臣) 1등에 책록되어 전토와 노비를 하사받았다. 그리고 가정대부에 특진되어 이조참판이 되고 연안군(延安君)에 봉해졌다.
이 해 겨울에 건주위(建州衛)의 야인 정벌에 참여해 또 공을 세웠다. 이듬 해 함길남도절도사가 되고, 1470년(성종 1) 북청부사를 겸임했으며, 1471년에는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책록되었다.
이어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1475년 황해도관찰사, 이듬 해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479년 다시 건주위 정벌에 참전하고, 그 공으로 이듬 해 자헌대부로 승진하였다.
이 해 전라도절도사로 있으면서 제주 관리에게 부탁해 말을 산 죄로 파직당하였다. 그 뒤 복직되어 영안도(함경도)관찰사·경상좌도병마절도사·지중추부사를 거쳐 1487년 형조판서가 되었다.
이듬해 충청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가 곧 교체되어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1489년 특진관에 임명되어 특히 영안도 5진에 대한 자문에 응했으며, 이어 호조판서가 되었다.
성품이 강직했으며, 사사로운 것 때문에 공을 버리지 않았다. 경상도 지례(知禮)의 도동사(道東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정양(靖襄)이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世祖實錄)』
- 『예종실록(睿宗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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