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증조는 이곡(李穀)이고, 할아버지는 이색(李穡)이며, 아버지는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 이종학(李種學)이다.
음보(蔭補)로 등용되어 태종 때 숙위사대호군(宿衛司大護軍) · 호조참의를 거쳐, 1418년(세종 즉위년)에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가 되었다.
1419년에 사은사(謝恩使) 이원(李原)을 따라 부사로서 명나라에 다녀온 뒤 공안부윤(恭安府尹)이 되고, 이어 황해도관찰사가 되었다. 1420년에 동지총제, 1422년에 함길도도관찰사, 1423년에 중군동지총제 · 경상도도관찰사를 거쳐 이듬해에는 형조참판이 되었다.
1427년에는 평안도감사로서 송골매[松鶻]를 잡아 진헌하지 못한 죄로 충청도 임천(林川)에 유배되었으나 곧 풀려났다. 1429년에는 진하사은사(進賀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이듬해 전라도처치사에 임명되었으나 처의 병으로 사임하자 광주목사로 임명되었다.
1434년 형조우참판 · 형조좌참판 ·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가 되고, 그 해 12월에 진헌사(進獻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4월에 귀국하였다. 이어 형조판서 · 지중추원사 · 경창부윤(慶昌府尹)을 거쳐 1436년에 판한성부사가 되었다.
그리고 1437년에는 처가 진안대군(鎭安大君) 이방우(李芳雨)의 딸이었기 때문에 지돈녕부사가 되었다. 시호는 양도(良度)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