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 200㎝, 가로 100㎝. 197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 연안 이씨 문중 소장.
이 초상은 화면 왼쪽에 ‘通政大夫承政院同副承旨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李崇元(통정대부승정원동부승지겸경연참찬관춘추관수찬광이숭원)“이라고 쓰여있는 좌안칠분면(左顔七分面)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이다. 관복정장의 전신교의좌상으로서 일견 공신도상(功臣圖像)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비슷한 시기의 것과는 작화 수법을 달리하고 있다.
작품의 내력과 주인공에 대한 글은 후대에 쓴 것으로 보이며, 초상화의 배경인 포도덩굴 그림도 나중에 추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종을 비롯한 많은 공신들의 상을 잘 그린 학포 이상좌가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 초상화는 우리나라 공신도상(功臣圖像)의 일반적인 작례(作例)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이한 점을 보이고 있는데, 양손이 드러나 있는 것과 배경에 포도넝쿨을 사실적으로 그려 넣은 점이 특히 그러하다.
우리나라 초상화에서는 대상 인물의 공식성과 엄숙성을 강조하기 위해 시선을 분산시키게 되는 손을 대부분 표현하지 않으며, 배경도 같은 이유로서 공백으로 비워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숭원은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1453년(단종 1)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1471년(성종 2) 좌리공신 3등으로 연안군(延安君)에 피봉되었다. 세조 때 벼슬이 이조판서에 이르렀지만 집안의 살림살이는 궁색을 면치 못하였을 정도로 청렴결백한 인물로 널리 알려졌으며 64세로 사망한 후 중종 때 청백리에 녹선(錄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