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재방(在邦), 호는 수우(守愚). 이용기(李龍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민주(李敏朝)이다. 아버지는 형조판서 이계(李溎)이며, 어머니는 남운붕(南雲鵬)의 딸이다. 종숙인 이송(李淞)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1803년(순조 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몇 번에 걸쳐 주서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다가, 1807년 원릉별검(元陵別檢)으로 처음 나아갔다. 그 뒤 전적을 거쳐 병조좌랑을 지내고 정언이 되었다. 얼마 뒤에 충청도도사가 되어 충실하게 근무하였다.
1814년에는 황해도의 시관이 되어 많은 선비를 뽑았다. 시문과 글씨에 능하여 당시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널리 교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