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전기에, 이부낭중 겸 태자세마, 시위위경, 형부상서 겸 선경부첨사 등을 역임한 관리.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124년(인종 2) 도압아(都押衙)로서 사신을 수행해 송나라에 다녀왔으며, 곧 권지합문지후(權知閤門祗候)가 되어 참직(參職)에 올랐다. 1126년 외직으로 나가 원흥진장(元興鎭將)과 지개성부사(知開城府事)를 차례로 역임했고, 다시 경직(京職)에 들어 권지합문지후와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상의봉어(尙衣奉御)를 차례로 거쳤다.
1134년 11월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郎)으로서 금나라에 하정사(賀正使)로 파견되었고, 이듬해 서경에서 묘청(妙淸)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전군병마판관(前軍兵馬判官)이 되어 반란을 진압했고, 그 공으로 시어사 우사낭중(侍御史右司郎中)에 올랐다.
1138년 다시 외직으로 나가 광주목사(廣州牧使)가 되었고, 다음해에는 지남경유수사(知南京留守事)로 옮겨 임기를 마친 뒤 이부낭중 겸 태자세마(吏部郎中兼太子洗馬)에 제수되었다.
그 뒤 시위위경(試衛尉卿)·형부상서 겸 선경부첨사(刑部尙書兼善慶府詹事)를 거쳐 1148년(의종 2) 3월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이르렀으며, 같은 해 11월 사책봉사(謝冊封使)로서 금나라에 다녀왔다. 1151년 7월 참지정사 판호부사(參知政事判戶部事)가 되었으나 같은 달 죽었다. 묘지명이 전하고 있다. 시호는 정정(貞靖)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한국금석문추보』(이난영, 아세아문화사, 1979)
- 「고려 경원이씨가문의 전개과정」(이만열, 『한국학보』21, 1980)
- 「李子淵と其の家系」(藤田亮策, 『靑丘學叢』13·15,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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