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성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중기에, 정릉참봉, 사옹원봉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흠중(欽仲)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52년(명종 7)
사망 연도
1596년(선조 29)
본관
전주(全州)
주요 관직
정릉참봉|사옹원봉사|좌찬성
관련 사건
임진왜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중기에, 정릉참봉, 사옹원봉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흠중(欽仲).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礻+甫)의 6대손으로 할아버지는 진사 이호(李浩)이다. 아버지는 홍천현감 이언사(李彦師)이며, 어머니는 홍희숙(洪希淑)의 딸이다. 박주(朴洲)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79년(선조 12)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학업을 연마하였다. 이 때 이조판서 이이(李珥)가 동인들의 탄핵을 받자 동료 유생들과 함께 이이의 무고함을 상소하고, 탄핵의 주동자인 송응개(宋應慨)·허봉(許篈)·박근원(朴謹元) 등의 유배를 청하였다. 그 뒤 천거를 받아 정릉참봉(靖陵參奉)을 거쳐 사옹원봉사에 전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여 개성에 이르렀을 때, 당시 상원군수(祥原郡守)이던 동생 이충성(李忠誠)이 봉양하던 어머니가 전란으로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직하였다. 수소문 끝에 어머니의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른 뒤 함열(咸悅) 강성촌(江城村)에 은거하였다. 후에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청음집(淸陰集)』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동유사우록(東儒師友錄)』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