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전기 판병조사, 평안도도체찰사, 우찬성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47년 정월에 공조참판으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서 강계도절제사를 역임한 뒤 판중추원사를 거쳐 1452년(문종 2)에는 우찬성이 되었다. 1453년(단종 1)에 판병조사를 겸직하였고, 이어 평안도도체찰사를 거쳐 다시 우찬성이 되었다.
그러나 그 해 10월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모신(謀臣) 권람(權擥)·한명회(韓明澮) 등과 함께 음모를 꾸며, 문종의 유명(遺命)을 받고 어린 단종을 보좌하던 우의정 김종서(金宗瑞)를 살해할 때 수양대군의 군사에 의해서 당시 영의정이던 황보인(皇甫仁), 이조판서 조극관(趙克寬) 등과 함께 추살(椎殺)되었다.
수양대군은 이 10월정변으로 실권을 장악하여 1455년에 단종에 이어 왕위즉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747년(영조 23) 영의정 김재로(金在魯)의 건의에 의하여 김종서·황보인 등과 함께 복관되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문종실록(文宗實錄)』
- 『단종실록(端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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