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전기 판병조사, 평안도도체찰사, 우찬성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시호충민(忠愍)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
  • 사망 연도1453년(단종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중추원부사|동지돈녕부사|우찬성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손승철 (전 강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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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전기 판병조사, 평안도도체찰사, 우찬성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할아버지는 의안대군(義安大君) 이화(李和)이며, 아버지는 완천군(完川君) 이숙(李淑)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무과출신으로서 1423년(세종 5) 호군(護軍)을 역임하고 1439년 의주목사가 되었다. 그 뒤 1441년에 경상좌도절제사를 거쳐, 1443년에 중추원부사·동지돈녕부사를 역임하고 이듬해에 충청도수군도안무처치사가 되었다.

1447년 정월에 공조참판으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서 강계도절제사를 역임한 뒤 판중추원사를 거쳐 1452년(문종 2)에는 우찬성이 되었다. 1453년(단종 1)에 판병조사를 겸직하였고, 이어 평안도도체찰사를 거쳐 다시 우찬성이 되었다.

그러나 그 해 10월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모신(謀臣) 권람(權擥)·한명회(韓明澮) 등과 함께 음모를 꾸며, 문종의 유명(遺命)을 받고 어린 단종을 보좌하던 우의정 김종서(金宗瑞)를 살해할 때 수양대군의 군사에 의해서 당시 영의정이던 황보인(皇甫仁), 이조판서 조극관(趙克寬) 등과 함께 추살(椎殺)되었다.

수양대군은 이 10월정변으로 실권을 장악하여 1455년에 단종에 이어 왕위즉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747년(영조 23) 영의정 김재로(金在魯)의 건의에 의하여 김종서·황보인 등과 함께 복관되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참고문헌

  • - 『세종실록(世宗實錄)』

  • - 『문종실록(文宗實錄)』

  • - 『단종실록(端宗實錄)』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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