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문약(文若), 호는 박천(博泉). 이창정(李昌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사부(師傅) 이심(李礻+尋)이다. 아버지는 이관징(李觀徵)이며, 어머니는 최호(崔皡)의 딸이다.
1660년(현종 1) 즉위증광시(卽位增廣試)에 병과로 급제하고, 사관(史官)을 거쳐 1668년(현종 9) 예조좌랑, 1670년 사간원 정언·사헌부지평이 되었다. 1675년(숙종 1) 홍문관에 들어갔으며 그 뒤 헌납·이조좌랑·응교·사간·우부승지·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1678년 예송(禮訟)에 의하여 시정된 복제(服制)의 고묘(告廟)와 송시열(宋時烈) 등의 오례주장자(誤禮主張者)의 처벌문제로 남인이 강경파 청남(淸南)과 온건파 탁남(濁南)으로 분열되자, 아버지와 함께 허목(許穆)·윤휴(尹鑴)를 중심으로 한 청남에 속하여 송시열의 극형을 주장하다가, 탁남의 영수 허적(許積) 등의 반대로 삭직되어 북청(北靑)에 유배되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풀려나 승지에 등용되고 경기도관찰사를 거쳐 1692년 예조참판이 되었다. 직간(直諫)을 잘하여 여러 차례 유배당하였으며, 1698년 영남에서 죽었다. 글씨에 능하고 문명도 높았다. 저서에는 『박천집(博泉集)』 33권과 『역대수성편람(歷代修省便覽)』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