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경주 원성왕릉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에 있는 통일신라의 제38대 원성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이다. 물 위에 왕의 시신을 걸어 안장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걸 괘(掛)자를 붙여 괘릉이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통일신라 왕릉으로 봉분과 돌사자·문인석·무인석·화표석 등 석조물로 이루어져 있다. 무인석은 서역인의 얼굴을 하고 있어 페르시아 무인상이라는 주장도 있다. 능묘 제도는 당나라의 영향을 받았으나 십이지신상을 호석에 배치한 것은 신라의 독창적인 것이다. 또한 각종 석조물에서 보여주는 뛰어난 조각 수법 등은 고도로 발달한 신라의 예술적 경지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8대 원성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
개설
내용
호석의 밖으로는 길이 110㎝, 너비 40㎝의 부채꼴 판석을 정연하게 깔아 회랑으로 조성하였다. 회랑 둘레에는 높이 1.7m의 네모진 돌기둥을 세워 돌난간을 설치했는데, 현재 돌기둥은 25개가 모두 남아 있으나, 돌기둥 사이사이에 2단으로 끼웠던 난간살대는 거의 유실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봉분의 바로 앞에는 동쪽으로 약간 치우쳐 사각형 석상(石床)이 놓여 있다. 봉분의 중심에서 남쪽으로 약 80m 떨어진 위치로부터 시작하여 동서로 약 25m 사이를 두고 북쪽으로부터 2005년 보물로 일괄 지정된 돌사자 두 쌍, 문인석(文人石) 한 쌍, 무인석(武人石) 한 쌍과 무덤임을 표시해주는 화표석(華表石) 한 쌍이 얼굴을 마주 대하고 차례로 늘어서 있다.
이 괘릉은 신라 제38대 원성왕의 능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원성왕이 재위 14년에 죽으니 유해를 봉덕사(奉德寺) 남쪽에서 화장했다고 하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원성왕릉이 토함산 동곡사(洞鵠寺)에 있으며, 동곡사는 당시의 숭복사(崇福寺)라 하고 최치원(崔致遠)이 비문을 쓴 비석이 있다고 하였다. 지금 괘릉에 비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인근에 숭복사 터가 있어 괘릉이 원성왕의 능이라는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신라고분연구』(최병현, 일지사, 1992)
- 「신라십이지상의 분석과 해석: 신라십이지상의 Metamorphose」(강우방, 『불교미술』1, 동국대학교박물관, 1973)
- 「新羅墳墓の封土表飾の諸型式について」(齋藤忠, 『考古學論叢』5, 新羅文化論攷, 1973)
- 「新羅王陵傳稱名に關する考古學上の一考察」(齋藤忠, 『新羅文化論攷』, 1973)
- 「新羅陵墓の外飾の石造物」(齋藤忠, 『新羅文化論攷』, 1973)
- 「十二支生肖の石彫と繞らした新羅の墳墓」(有光敎一, 『靑丘學叢』25, 193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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