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제23대 법흥왕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능.
개설
내용
법흥왕릉의 내부구조는 알 수 없고 외형상으로는 원형이며, 삼국시대 신라왕릉으로는 비교적 작은 편이다. 봉분의 표면이나 주위에는 아무 장식물이 없는데, 다만 봉분 아래에 자연석의 일부가 드물게 드러나 있다. 이것은 냇돌로 쌓은 둘레돌(호석(護石))을 받쳤던 돌인데, 비슷한 유형으로 선도산 동쪽 기슭의 경주 무열왕릉이 있다. 이러한 둘레돌 구조는 경주시내에서 냇돌만 쌓은 평지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의 둘레돌보다 한 단계 발전한 것이다.
특징
지증왕과 법흥왕을 경계로 이러한 기록상의 차이는 왕릉의 입지조건이 달랐기 때문이다. 지증왕까지의 역대왕릉은 경주시내의 수많은 고분이 밀집되어 있는 평지고분군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어서 구별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편찬 당시에는 밀집된 고분들 가운데 역대왕릉을 일일이 구별할 수 없었다. 반면에 법흥왕 이후의 왕릉은 평지고분군을 벗어나 교외 구릉지대에 1기 또는 2·3기씩 따로따로 자리잡고 있어, 후세까지도 각 왕릉 소재지가 주변지형이나 구조물과 관련해 전해 내려올 수 있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신라 왕경 고분의 분포와 체계 변화」(김대환,『신라문화제학술발표회논문집』제27집, 2006)
- 「고신라적석목곽분의 변천과 편년」(최병현,『한국고고학보』10·11,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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