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미 도굴을 당하였던 것인데, 1920년 학술조사를 통하여 내부구조가 밝혀졌고, 금동관장신구·은제띠고리·은제행엽(銀制杏葉) 등이 출토되었다. 1964년에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봉분의 평면형태가 정사각형으로 된 토분으로, 한변의 길이 9.5m, 높이 약 3m이며, 봉분 아래에 호석(護石)을 설치하였다. 호석은 장대석(長臺石)을 3단으로 쌓아 면석(面石)으로 하고 네 귀에는 우주(隅柱)를 세웠으며, 무사의 옷을 입은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탱석(撑柱石)을 각 변마다 세개씩 배치하였다.
면석과 탱석 위에는 갑석(甲石)을 덮었다. 묘실은 봉분 남쪽으로 치우쳐 직사각형의 상자형으로 축조된 횡혈식석실(橫穴式石室)인데, 역시 장대석으로 쌓았다. 묘실 동벽에서 잇달아 남쪽으로 연도(羨道)가 나 있고, 묘실 서벽 가까이에 안상문(眼象文)이 새겨진 관대(棺臺)가 설치되었다.
이와 같은 네모무덤은 신라고분으로서는 유일한 것으로 그 계통을 정하기 어려우나, 그 구조와 함께 통일신라시대의 얼마 안 되는 십이지(十二支) 둘레돌을 갖춘 고분으로 중요하며, 경상남도 거창·진주 등지에 나타나는 고려 전기의 둘레돌을 갖춘 네모무덤의 선구적인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