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9,498㎡. 외형상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지름 약 22m, 높이 약 6m이다.
능 하부 주위에는 봉분을 보호하기 위한 둘레돌〔護石〕이 설치되어 있다. 둘레돌은 목조건축물의 석조기단(石造基壇)과 같은 형태로 되어 있어서, 가장 아래에 지대석(地臺石)이 있고, 그 위에 높이 89㎝, 너비 120㎝의 면석(面石)이 놓였다.
면석 사이사이에는 뿌리가 고분 안으로 길게 뻗어 면석과 봉분을 지탱하기 위한 탱석(橕石)을 배치하였는데, 탱석의 앞면은 면석보다 약간 앞으로 나와 있다. 탱석은 두 칸 건너 하나씩 무복(武服)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는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조각되어 있다.
면석과 탱석 위에는 갑석(甲石)이 놓여 있다. 이러한 둘레돌구조는 통일신라시대 왕릉이 가장 정비된 형식이다. 둘레돌에서 밖으로 1.3m 떨어진 곳에는 높이 175㎝의 돌기둥 40개를 세워 돌난간을 둘렀다.
지금 돌기둥은 거의 다 남아 있으나 기둥 사이사이에 끼웠던 난간의 돌살대는 거의 없어졌으나 현재 복원하였다. 난간과 둘레돌의 사이에는 길이 110㎝, 너비 약 45㎝의 부채꼴 판석을 정연하게 깔았다.
능 앞에는 안상문(眼象文)이 새겨진 높은 석상(石床)이 놓여 있다. 그러나 그밖에 통일신라시대 왕릉에서 볼 수 있는 돌사자·문인석(文人石)·무인석(武人石)과 같은 석조물은 보이지 않는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경덕왕은 재위 24년에 승하했는데, 모지사(毛祗寺) 서쪽 봉우리에 장사지냈다고 하였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처음 경지사(頃只寺) 서쪽 언덕에 장사 지내고 돌을 다듬어 능을 만들었다가(鍊石爲陵) 뒤에 양장곡(楊長谷) 가운데로 이장했다고 전하고 있다. 지금 전하는 경덕왕릉의 위치와 문헌기록의 일치여부는 확실치 않으나 돌을 다듬어 능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둘레돌(호석)을 의미한다면 현 상태와 유사하다.
또한 둘레돌의 세부수법이나 여기에 새겨진 십이지신상의 조각수법을 신라 하대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이 능이 경덕왕의 능이라는 점에 의문을 갖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