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이조정랑, 병조정랑, 공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 해에 이조정랑으로 재직 중 을사사화가 일어나 많은 사림이 화를 입자, 당시 권신이던 숙부 이기(李芑)를 비판하고 이황(李滉)·정황(丁煌) 등 많은 선비들을 구하여주었다.
1549년(명종 4)에 병조정랑으로 재직시 안명세(安名世)에 대한 죄를 더할 것에 논의(論議)가 일어났는데 이기의 전횡을 비난한 일로 임백령(林百齡)의 탄핵을 받아 장류(杖流), 강계에 안치되었다가 이황 등 많은 사류의 상소로 풀려났다. 이 때 노수신(盧守愼)·유희춘(柳希春)·김난상(金鸞祥)·유담(柳湛) 등과 함께 복직되어 영흥부사에 이어 사인·판교·공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간잡고(蓮幹雜稿)』
- 『용재집(容齋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대동야승(大東野乘)』
- 『을사전문록(乙巳傳聞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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