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출신. 1919년 3월 전라남도 광주군 본촌면 일곡리에서 아우 이욱호(李郁鎬) 등과 함께 수백명의 군중을 지휘하여 독립만세를 높이 부르면서 광주시내로 진입, 독립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그 해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4월형을 받고 대구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기각되어 광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0년 5월 상해임시정부 특파원 한준호(韓俊鎬) · 박문용(朴文鎔) 등과 함께 군자금모금을 위하여 노진영(盧軫永) · 신대선(辛大善) 등에게 권총을 가지고 군자금모금취지문을 발송하는 등 활동하다가 잡혀 1921년 5월 광주지방법원에서 궐석재판으로 징역 7년형을 받고, 1922년 9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이 확정되어 1924년 12월 31일까지 옥고를 치렀다.
1988년 12월 16일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