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진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내의약원부제조, 호조참의,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치명(穉明)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47년(영조 23)
사망 연도
1819년(순조 19)
본관
전주
주요 관직
내의약원부제조|호조참의|대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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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내의약원부제조, 호조참의,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치명(穉明). 이방직(李邦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창문(李昌文)이다. 아버지는 진사 이명복(李命復)이며, 어머니는 허원(許垣)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73년(영조 49)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782년(정조 6) 왕이 인정전(仁政殿)에 친림하여 실시한 경과문과별시(慶科文科別試)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보직되었다가 정언이 되었다. 이어 1784년 지평에 취임하였는데, 이 때 여러 궁방(宮房)의 궁속들이 도서(圖署)로써 땔나무와 곡식들을널리 점령하여 강제로 거뒤들임으로 그 폐단을 제거하도록 상주하였다.

그러나 왕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해명하였으며, 그 뒤에도 여러 번 직언(直言)을 감행하다가 무엄하다는 이유로 창성에 귀양가기도 하였다. 1800년 순조가 즉위하자 경연관을 겸하다가, 내의약원부제조와 호조참의을 거쳐, 1813년(순조 13) 대사간에 올라 국왕에게 여러가지 충언(忠言)을 계속하여 국정을 바로잡으려 노력하였다.

참고문헌

『정조실록(正祖實錄)』
『순조실록(純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사마방목(司馬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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