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정언, 수찬, 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 해 다시 대신 허적(許積)·민희(閔熙) 등과 함께 송시열을 안치형에 처할 것을 집요하게 청했으나, 역시 수락되지 않았다. 홍문록(弘文錄: 홍문관의 제학이나 교리를 선발하기 위한 제1차 인사기록)에 선발되고 정언·수찬·지평을 거쳐, 6년에는 부수찬·장령을 거쳐 다시 부수찬에 임명되었다.
정언 재직 때는 대사간 최문식과 함께 조지석(趙祉錫)을 탄핵하여 체차시켰다. 그러나 곧바로 경신환국(庚申換局)이 발생하여 남인이 대거 축출됨으로써 이후 약 10년 동안 침체해 있다가 기사환국 이후인 1691년에 다시 장령으로 기용되었다. 그 해 숙종이 현종(顯宗)의 능침(陵寢)을 살피기 위해 능행을 준비하자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행차를 반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해 시강원필선(侍講院弼善)을 거쳐 약 2년 동안 장령으로 활동했고, 1693년 헌납을 거쳐 사간에 올랐다. 정치적으로 볼 때 허적(許積)과 가까웠고, 여흥 민씨 민암(閔黯)가계와 통혼하는 등 대체로 탁남(濁南)으로 파악되는 인물이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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