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최응(李最應: 興仁君)의 아들이다.
1871년 선파유생전시(璿派儒生殿試)에서 합격하여 어가의 호위를 맡고 직부(直赴)로서 별입직(別入直)하였다. 1873년에 병환이었을 때 고종이 보낸 약재를 받았다.
그 후 1874년 규장각대교(奎章閣待敎), 1876년 성균관 대사성과 홍문관 부제학, 1877년 이조참의, 1878년 규장각 직제학과 홍문관 부제학, 1880년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와 이조참판과 예조참판, 1881년 통리기무아문 선어학당상(統理機務衙門 選語學堂上)과 예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시호는 헌간(獻簡)이고, 1899년 완영군(完永君)에 추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