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거창현감, 장례원판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이칭경림군(慶林君), 종호(淙滈)
  • 노천(老泉)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인조반정|이괄의 난
  • 본관경주(慶州)
  • 사망 연도1668년(현종 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거창현감|상주목사
  • 출생 연도1589년(선조 2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인혁 (제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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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거창현감, 장례원판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이종호(李淙滈). 자는 노천(老泉). 생원 이자침(李自琛)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난(李鸞)이다. 아버지는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 이수일(李守日)이며, 어머니는 완산이씨(完山李氏)로 이귀년(李貴年)의 딸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2년(광해군 4) 진사시에 합격하고 1629년 금오랑(金吾郎)에 제수되었다. 당시 세력가인 이이첨(李爾瞻)이 이정을 이이첨의 당(黨)으로 끌어들이려 했으나 응하지 않았고, 그 뒤 직장으로 승진하였는데 행신(倖臣)의 서자와 같은 벼슬이라 하여 관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뒤 거창현감으로 발탁되고, 이괄(李适)의 난 때에는 아버지를 도와 반군(叛軍)을 막았다. 그 뒤 여러 고을의 수령을 거쳐 상주목사로 임명되었으나 나이를 핑계로 사양하였고, 이어 장례원판결사로 임용되었다.

1661년(현종 2) 노비의 일이 궁액(宮掖)으로 확대되어 왕과 마찰을 빚자 파직되고, 1668년 가선대부(嘉善大夫)의 품계를 받고 경림군(慶林君)에 습봉(襲封)되었다.

참고문헌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송자대전(宋子大全)』

  • - 『백강집(白江集)』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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