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일본으로 유출되었던 것을 1930년 전형필(全鎣弼)이 일본 오사카(大阪)의 고미술상에서 구입해와 새로 표구하였다. 이때 오세창(吳世昌)이 표제와 발문을 썼다.
화첩에는「청금상련(聽琴賞蓮)」,「기방무사(妓房無事)」,「청루소일(靑樓消日)」,「월하정인(月下情人)」,「월야밀회(月夜密會)」,「춘색만원(春色滿園)」,「소년전홍(少年剪紅)」,「주유청강(舟遊淸江)」,「연소답청(年小踏靑)」,「상춘야흥(賞春野興)」,「노상탁발(路上托鉢)」,「납량만흥(納凉漫興)」,「임하투호(林下投壺)」,「무녀신무(巫女神舞)」,「주막(酒幕)」,「쌍검대무(雙劍對舞)」,「휴기답풍(携妓踏風)」,「쌍륙삼매(雙六三昧)」,「문종심사(聞鐘尋寺)」,「노중상봉(路中相逢)」,「계변가화(溪邊佳話)」,「정변야화(井邊夜話)」,「삼추가연(三秋佳緣)」,「표모봉심(漂母逢尋)」,「야금모행(夜禁冒行)」,「유곽쟁웅(遊廓爭雄)」,「이승영기(尼僧迎妓)」,「단오풍정(端午風情)」,「홍루대주(紅樓待酒)」,「이부탐춘(嫠婦耽春)」 등 30점이 실려 있다.
대부분 기생과 한량을 중심으로 한 남녀 간의 행락이나 정념(情念) 또는 양반 사회의 풍류를 소재로 그린 것이다. 공금 횡령 등의 방법으로 치부하였던 경아전(京衙前)들에 의하여 조성되었던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의 서울 시정(市井)의 유흥적 · 향락적 분위기를 짙게 반영하고 있다.
등장 인물들은 남녀 모두 대체로 갸름한 얼굴에 눈초리가 치켜 올라간 선정적인 모습에 맵시와 멋이 넘치는 자태로 그려져 있다. 그래서 도시적인 세련미와 함께 낭만적이고 색정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각 인물들의 몸 동작과 표정을 비롯한 각종 배경들을 뛰어난 소묘력을 바탕으로 사실적으로 나타냈다. 특히 가늘고 유연한 필선과 한복의 아름다운 색감 등을 최대한으로 살린 색채의 효과적인 사용 등을 통하여 당시의 풍속상과 풍류 생활의 멋과 운치를 실감나게 전해주고 있다.
18세기 후반 김홍도(金弘道) 풍속화의 성향을 부분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소재의 선정이나 구성법, 인물들의 표현 기법 등 전반에 걸쳐 신윤복의 독보적인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화풍은 조선 말기 유운홍(劉運弘), 유숙(劉淑) 등을 거쳐 1930년대 이용우(李用雨)의 인물화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와 같이 남녀간의 춘의(春意)나 색태(色態)를 자유롭게 부각시키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경향은 조선 후기 풍속화의 새로운 흐름이다. 그래서 당시의 시대 조류와 사회적 분위기를 짙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