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치홍(致弘), 호는 시산(詩山). 도화서 화원으로 첨추(僉樞)를 지냈다.
1819년(순조 19)이수민(李壽民)·이의양(李義養) 등 여러 화원들과 함께 문조신정후(文祖神貞后) 가례반차도(嘉禮班次圖) 제작에 참여하였다. 현존하는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산수인물도이지만, 그밖에 화조와 풍속을 다룬 그림도 남기고 있다.
이들 그림에는 대체로 김홍도(金弘道)의 영향이 가장 두드러져 보이고 있으나, 기녀들의 일상생활의 한 장면을 그린 「기녀도」(서울 개인 소장)에는 신윤복(申潤福)의 화풍도 엿보인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전반적으로 나타나 있는 변화없는 필선이라든가 무감각한 담채, 단조로운 표정의 인물 등은 19세기 이후 형식화의 길을 걷던 화원화풍의 경향과 상통된다.
유작으로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청산고주도(靑山孤舟圖)」·「월야소선도(月夜小仙圖)」,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부신독서도(負薪讀書圖)」, 개인 소장의 「등고망원도(登高望遠圖)」,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화조도(花鳥圖)」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