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희령군의 묘(墓)는 경기도 광주군 동부읍 덕풍리에 있으며, 별묘(別廟)는 그가 살던 서울 동대문 밖에 있었다. 병자호란을 당하여 종손이 함몰하고 신주(神主)를 잃어 종가(宗家) 계통의 후손과 제사가 단절되었다.
그 뒤 150여년이 지난 1792년(정조 16) 자손들이 정조에게 아뢰어 어명으로 예조의 입안(立案)을 받아 예천에 사는 13대손 병성(秉誠, 1771∼?)을 봉사손(奉祀孫)으로 정하고 사우(祠宇)를 건립하기 시작하였다. 봉상시(奉常寺)에서 자재를 지급받아 1797년(정조 21) 완성하고, 희령군 이타의 시호인 이정공(夷靖公)을 따라 이정사라고 하였다.
사당은 둥글게 다듬은 초석 위에 원주를 세웠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일반 사가(私家)에서는 보기드문 규모다.
삼문(三門)은 자연석 초석 위에 육각의 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위에는 묘우와 같은 양식의 익공으로 장식하였다.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구계리에 소재하고 있는 전주이씨 희령군파 종회(宗會)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