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간공 이정영 묘역

  • 역사
  • 유적
  • 조선 후기
  • 시도문화유산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이정영의 무덤.
시도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나각순 (서울시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4년 07월 11일
효간공 이정영 묘역 미디어 정보

효간공 이정영 묘역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이정영의 무덤.

내용

1994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관악산에서 한강으로 뻗은 화장산 지맥의 산기슭인 동작구 사당4동에 위치해 있다. 묘역에는 신도비 1기, 묘갈 1기, 상석 1기, 문관석 2기, 망주석 2기가 상설되어 있으며, 묘를 포함한 1필지 11,530㎡의 보호구역과 함께 1994년 5월 10일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주이씨 함풍군파(咸豊君派) 종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신도비는 화강석으로 되어 있으며 규모는 높이 270㎝, 폭 90㎝, 두께 30㎝로 옥개형 지붕돌이 올려져 있다. 묘는 17세기 말 18세기 초의 분묘 형식과 제도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상설된 석물들은 당시의 석조미술 내지 석조양식을 대표할 만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정영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호조판서 이경직(李景稷)의 아들이다. 1636년(인조 14)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으며, 병자호란에 임하여는 강화도 수성에 참여하였다가 남한산성이 함락되어 소현세자(昭顯世子)가 볼모로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갈 때 봉행하였다.

이조판서와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판돈녕부사로 1685년(숙종 11)에 기로소에 들어갔다. 글씨에 뛰어났는데 특히 전서(篆書)와 주서(籒書)를 잘 썼는 바 나라의 전액을 비롯하여 보책으로부터 고관의 비갈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이 많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해남의 「이순신명량대첩비」, 통진의 「민기신도비」, 양주의 「영안위흥주원비」와 「호판이경직비」, 「정여창비」 등이 있다.

참고문헌

  • - 『서울의 산』(서울특별시편찬위원회, 1997)

  • - 『문화재현황』(서울특별시, 1997)

  • - 『동작구지』(서울특별시 동작구, 1994)

  • - 『서울의 전통문화』제2권(서울특별시, 1986)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