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관악산에서 한강으로 뻗은 화장산 지맥의 산기슭인 동작구 사당4동에 위치해 있다. 묘역에는 신도비 1기, 묘갈 1기, 상석 1기, 문관석 2기, 망주석 2기가 상설되어 있으며, 묘를 포함한 1필지 11,530㎡의 보호구역과 함께 1994년 5월 10일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주이씨 함풍군파(咸豊君派) 종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신도비는 화강석으로 되어 있으며 규모는 높이 270㎝, 폭 90㎝, 두께 30㎝로 옥개형 지붕돌이 올려져 있다. 묘는 17세기 말 18세기 초의 분묘 형식과 제도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상설된 석물들은 당시의 석조미술 내지 석조양식을 대표할 만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정영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호조판서 이경직(李景稷)의 아들이다. 1636년(인조 14)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으며, 병자호란에 임하여는 강화도 수성에 참여하였다가 남한산성이 함락되어 소현세자(昭顯世子)가 볼모로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갈 때 봉행하였다.
이조판서와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판돈녕부사로 1685년(숙종 11)에 기로소에 들어갔다. 글씨에 뛰어났는데 특히 전서(篆書)와 주서(籒書)를 잘 썼는 바 나라의 전액을 비롯하여 보책으로부터 고관의 비갈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이 많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해남의 「이순신명량대첩비」, 통진의 「민기신도비」, 양주의 「영안위흥주원비」와 「호판이경직비」, 「정여창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