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은경(殷卿). 1880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가 되고 이듬해 부수찬(副修撰)이 되었다. 1882년 사헌부에 사간(司諫)과 헌납(獻納)을 역임하였다.
이후 1882년 『선원보략(璿源譜略)』의 수정 때 종부시정(宗簿寺正), 1886∼1888년 이조참의(吏曹參議), 1887년 성균관 대사성(大司成), 1889년 승정원(承政院) 우부승지(右副承旨), 1890년 병조참판(兵曹參判), 예조참판(禮曹參判), 공조참판(工曹參判), 1892년 황해감사(黃海監司: 황해도 관찰사)를 거쳤다. 황해도에서 서울로 돌아와 1893년 형조참판(刑曹參判), 병조참판, 1894년 예방승지(禮房承旨)를 역임하였다. 봉작은 종2품 가의대부(嘉義大夫)이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