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행정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청송 노래산(老萊山)에서 태어났으나 6세에 부친상, 9세에 모친상을 당하여 외삼촌인 이대기(李大期)에게 양육되었다. 이대기에게 학문을 배우고, 뒤에 성안의(成安義)에게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때 폐모론이 대두되자, 탄식하면서 과거를 포기하고 경학 공부에 힘썼다. 1626년(인조 4) 군자참봉(軍資參奉)에 제수되었다가 이듬해에 사직하고, 장유(張維)가 제용감주부로 천거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송라도찰방(松羅道察訪) 겸 수륙군향차원(水陸軍餉差員)에 제수되어 북진하다가 조령에 이르러 강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통곡하고 벼슬을 버리고 물러났다. 청원에 조그만 집을 짓고 행정이라 이름하여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소강절(邵康節)의 시 「안분음(安分吟)」을 벽에 적어놓고 후학들을 격려하였다고 한다. 1639년 창평현감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유학을 진흥시키는 데 힘썼으며, 하홍도(河弘度)·강헌지(姜獻之) 등과 교유하였다. 1680년(숙종 6)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다. 저서로는 『행정유고(杏亭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 『행정유고(杏亭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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