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高宗)과 복녕당(福寧堂) 양씨(梁氏) 사이의 딸. 일출소학교(日出小學校: 일신국민학교) 5학년이던 1925년 일제에 의하여 볼모로 일본에 끌려가 동경 학습원(學習院)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외로움과 향수병으로 정신질환인 조발성(早發性) 치매증으로 고생하였다.
1931년 대마도(對馬島) 번주(藩主)의 아들인 소다케시[宗武志] 백작과 강제 결혼하여 3년만에 딸(宗正惠)을 얻었으나 지병이 계속되었다. 1951년 이혼을 당한 이후 결혼에 실패한 딸마저 실종되자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다.
1961년 11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박정희(朴正熙)가 미국 방문 도중 일본에 기착한 기회에 영친왕(英親王)의 부인인 이방자(李方子)가 면담하여, 1962년 1월 26일 38년만에 귀국할 수 있었다. 귀국 직후부터 5년간 서울대학교 대학병원에 입원하였다.
그 후 창경궁(昌慶宮) 낙선재(樂善齋)와 연결되어 있던 수강재(壽康齋)에 칩거하였다. 계속된 치료에도 병세는 호전되지 않다가 1989년 4월 21일 상오 11시 40분에 별세하였다. 그 해 4월 25일 경기도 미금시 금곡동(金谷洞)에 소재한 홍유릉(洪裕陵) 부속림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