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출신. 아버지는 이훈(李勳)이다. 1405년(태종 5) 무과에 급제하였다.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어려서 궁 밖의 조신(朝臣)의 집에서 양육될 때 자기집에서 함께 있던 관계로 수양을 보위하였다.
1419년(세종 1) 왜구가 경기도 고양군에 침입하였을 때, 당시 첨총제(僉摠制)였던 그는 충청도조전병마도절제사(忠淸道助戰兵馬都節制使)에 제수되어 왜구진압에 큰 공을 세웠고, 1421년에는 진하사의 부사(副使)로서 정탁(鄭擢)과 함께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경상우도병마절제사가 되었다.
1423년 좌군동지총제·판의주목사를 거쳐, 1429년에 사은사로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병조참판이 되었다가 소임을 소홀히 하였다 하여 서흥에 유배를 갔다가, 곧 풀려나 동지중추원사가 되었다.
1423년 다시 이간(李侃)·박용(朴用) 등의 일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가 1435년 진위사(陳慰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벼슬은 동지중추원사에 이르렀다. 사후 세종은 제문을 지어주었으며, 평정(平靖)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