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6년(연산군 2)에 무사 장정(張珽)·이원종(李元宗) 등과 함께 서정장수(西征將帥)에 임명된 뒤, 종성·회령의 부사, 의주목사 등을 지내고, 1516년(중종 11) 경상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이듬해 왕비 윤씨(尹氏)의 책봉에 대한 주청사를 명나라에 파견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서 정조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24년 평안도병마절도사로 재직할 때에 삼둔(三屯)의 야인을 구축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오히려 대간과 의금부에서 탄핵되어 파직당하였다.
그 해에 다시 복직되었다가, 1528년에는 명나라의 황후가 죽자 진위사(陳慰使) 이봉(李芃)과 함께 진향사(進香使)로 명나라에 가던 도중에 행산역(杏山驛)에서 발병하여 되돌아왔다가 무단히 돌아왔다는 죄로 남포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병으로 돌아온 것이 밝혀지자 풀려나온 뒤 1531년 충청도병마절도사로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