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양오(養吾), 호는 두봉(斗峯). 이사필(李士弼)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우인(李友仁)이고, 아버지는 찬성 이상의(李尙毅)이며, 어머니는 윤현(尹晛)의 딸이다.
1597년(선조 30)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사서·형조정랑·이조정랑·홍문관부교리·사간·응교를 거쳐 세자시강원필선으로 왕세자에게 경사(經史)를 강의하였다. 그 뒤 춘추관편수관이 되어 역대실록의 중간에 참여하였다.
1608년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가독서를 하였고, 광해군 초기에 승지·대사간을 지냈다. 1613년(광해군 5) 동지의금부사로 계축옥사를 다스려 형조판서에 오르고, 이어 우참찬·지경연사(知經筵事)를 지냈다.
시문에 능하여 1606년 중국사신 주지번(朱之蕃)이 왔을 때 이호민(李好閔)·허균(許筠) 등과 접반하였고, 광해군 때에는 인정전정시 등에 대독관(對讀官)으로 자주 배석하였다. 여성군(驪城君)에 봉하여졌으며,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