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평(咸平). 전라남도 나주 출신. 아버지는 사간 이유근(李惟謹)이다. 문예와 사장이 뛰어났으며, 선전·도총·경력을 거쳐 보령·박천·창성 등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1603년(선조 36) 군기시부정(軍器寺副正), 1604년 구성부사, 1606년에는 만포진첨절제사로 나가 야인을 안무하였다. 1612년(광해군 4) 충청도수군절도사에 특진되고, 1613년 인목대비(仁穆大妃)에 대한 유폐론이 일어났을 때 이에 반대하였다.
이 해에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충청병사로 있으면서 칠서(七庶: 칠서의 옥을 일으킨 일곱 사람의 서자)들과 내통하였다는 혐의로 파직되어 문초를 받다가 옥중에서 죽었다. 이때 그의 아들 이선철(李先哲)도 삭탈관직되었다. 인조반정 후 형조판서로 추증되었으며, 숙종 때 정려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