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병조좌랑, 예조정랑, 형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해 병조좌랑·예조정랑을 거쳐, 이듬해에는 지평·전적·지평을 차례로 제수받아 유희분(柳希奮) 등과 함께 능해군(綾海君)구성(具宬)의 탄핵에 앞장섰고, 1608년 예조정랑에 올랐다.
배천군수(白川郡守)로 있던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옥사가 일어나자 김직재 첩의 사위인 황보신(皇甫信)을 체포한 공으로 가자되어 형조참의에 발탁되었고, 그 뒤 훈신으로서 상을 당하여 호상(護喪)의 예를 받았다. 1615년 성절사로 중국에 다녀왔고, 이듬해 도총관에 제수되었다.
1617년 인목대비의 폐비 문제가 일어나자 이에 동조하였고, 1620년 청도군수(淸道郡守)로 부임한 뒤 술에 빠져 오랫동안 좌아(坐衙)를 폐기하였다는 헌부의 탄핵을 받기도 했다. 석흥군(碩興君)으로 봉해졌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紀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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