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병조판서, 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이조판서·병조판서 등을 거쳐 1752년 우의정에 승진하고, 같은해 좌의정에 올랐다가 영돈녕부사로 전임되었다. 1761년 영의정에 올랐으나 장헌세자(莊獻世子)의 평양 원유사건(遠遊事件)에 인책, 음독 자결하였다.
담론을 잘하여 허식을 차리지 않고 남과 희소(喜笑: 즐겁게 농담함)하기를 즐겼으며, 시에 뛰어난 재질을 보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저서로는 『진암집(晉庵集)』 8권 4책이 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강한집(江漢集)』
- 『진암집(晉庵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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