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축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공조참판, 형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촌(沙村)
  • 시호안양(安襄)
  • 이칭완산군(完山君)
  • 자임(子任)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임진왜란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1614년(광해군 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호조좌랑|예안현감|형조정랑
  • 출생 연도1538년(중종 3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용덕 (전 중앙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중기에, 공조참판, 형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임(子任), 호는 사촌(沙村).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현손이며, 순성군(順成君) 이개(李𧪚)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헌양부정(巚陽副正) 이사조(李嗣祖)이고, 아버지는 극포수(極浦守) 이희남(李希男)이며, 어머니는 이조참판 남세준(南世準)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76년(선조 9)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그 뒤 호조좌랑·예안현감·형조와 공조의 정랑 등을 거쳐, 1589년 안악군수로 있을 때 한준(韓準)·박충간(朴忠侃)·한응인(韓應寅)과 함께 정여립(鄭汝立)의 모역을 조정에 고변한 공으로 이듬해 평난공신(平難功臣) 1등으로 완산군(完山君)에 봉하여지고 공조참판으로 승진되었다.

그 뒤 형조판서·우참찬을 역임하고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건의대장(建義大將) 심수경(沈守慶)의 부장으로 의병을 지휘하였고, 1594년에는 진휼사가 되어 서울의 백성을 구휼하였다. 이어 좌참찬을 거쳐, 1611년(광해군 3)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에 올랐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안양(安襄)이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월사집(月沙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