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근숙(根叔). 할아버지는 좌참찬 이몽량(李夢亮)이다.
1600년(선조 33) 문음으로 등용되어 청단도찰방(靑丹道察訪)을 거쳐 전설사별제(典設司別提)·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역임하고, 충청도 덕산현감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그의 공덕을 칭송하였다.
1627년(인조 5) 강원도 횡성현감으로 있을 때, 이인거(李仁居)가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옹립하는 데 공을 세운 정사공신(靖社功臣)들이 나라를 그르친다는 명분으로 난을 일으켜 관부(官府)에 돌입하여 군기(軍器)을 약탈하고 죄수를 풀어주는 등 난동을 피워 군대와 백성을 위협하였다.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감히 제압하는 자가 없었다.
그는 횡성을 빠져나와 원주로 가서 목사 홍보(洪보)와 함께 싸워, 이인거와 그의 아들 이성지(李姓支) 일당을 생포하여 서울로 압송하였다. 그 공으로 소무공신(昭武功臣) 2등이 되어 오산군(鰲山君)에 봉하여졌다. 호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의정(毅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