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탁남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사복시주부, 덕산현감, 횡성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근숙(根叔)
시호
의정(毅靖)
이칭
오산군(鰲山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72년(선조 5)
사망 연도
1645년(인조 23)
본관
경주(慶州)
주요 관직
덕산현감|횡성현감|호조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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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사복시주부, 덕산현감, 횡성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근숙(根叔). 할아버지는 좌참찬 이몽량(李夢亮)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0년(선조 33) 문음으로 등용되어 청단도찰방(靑丹道察訪)을 거쳐 전설사별제(典設司別提)·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역임하고, 충청도 덕산현감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그의 공덕을 칭송하였다.

1627년(인조 5) 강원도 횡성현감으로 있을 때, 이인거(李仁居)가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옹립하는 데 공을 세운 정사공신(靖社功臣)들이 나라를 그르친다는 명분으로 난을 일으켜 관부(官府)에 돌입하여 군기(軍器)을 약탈하고 죄수를 풀어주는 등 난동을 피워 군대와 백성을 위협하였다.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감히 제압하는 자가 없었다.

그는 횡성을 빠져나와 원주로 가서 목사 홍보(洪보)와 함께 싸워, 이인거와 그의 아들 이성지(李姓支) 일당을 생포하여 서울로 압송하였다. 그 공으로 소무공신(昭武功臣) 2등이 되어 오산군(鰲山君)에 봉하여졌다. 호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의정(毅靖)이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소재집(疎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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