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영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광주부윤, 장단부사, 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앙(士仰)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한산(韓山,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광주부윤|장단부사|경상도관찰사
  • 출생 연도1744년(영조 2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상일 (성균관대학교, 독문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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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광주부윤, 장단부사, 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사앙(士仰). 승지 이집(李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병건(李秉健)이고, 아버지는 이산중(李山重)이며, 어머니는 조겸빈(趙謙彬)의 딸이다. 참판 이해중(李海重)의 조카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72년(영조 4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78년 부교리에 처음으로 부임하여, 교리·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783년 부교리로 있으면서 불성실한 소를 올려 파직당하였으나, 다음해 부수찬에 다시 임명되어 진하사은 겸 동지사(進賀謝恩兼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를 다녀왔다.

1785년 통정대부로 승진하여 광주부윤(廣州府尹)과 장단부사(長湍府使)를 거쳐, 1793년 황해도관찰사에 임명되어 특히 기민(飢民) 구제에 힘썼으나 1795년 귀환하는 정사(正使)의 상구(喪柩: 장시지낼 때의 관)를 홀대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당하였다.

그 뒤 곧 경상도관찰사로 다시 등용되어서는 각종 묵은 토지의 등급을 낮추고 조세의 부담을 덜어 주어 농사를 권면하는 데 힘썼다. 1797년곤양군(昆陽郡) 봉산(封山)의 소나무 관리를 잘못한 죄로 경상도관찰사직에서 파직당하였다가 대사간으로 다시 등용되어 공조참판·충청도관찰사·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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