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택지(澤之). 고려의 시중(侍中) 이암(李嵒)의 후손이며, 이지(李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판 이육(李陸)이고, 아버지는 이교(李嶠)이며, 어머니는 성수재(成秀才)의 딸이다.
1531년(중종 26) 사마시를 거쳐 1538년(중종 33) 별시 문과에 급제, 예문관검열을 거쳐 성균관전적에 승진하여 승문원교검을 겸임하였다. 명나라에 보내는 외교문서 작성에 뛰어나 승문원의 관직을 겸임하였으며, 1554년(명종 9) 동지중추부사로 동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예조참판을 지냈다.
청렴 간결을 숭상하였으며, 검약한 생활을 하였다. 문장에 능하여 해서(楷書)를 잘 썼으며, 사예(射藝)에도 능하여 그를 따라갈 자가 없었다. 작품으로는 경기도 양주에 있는 예조참판임추묘비(禮曹參判任樞墓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