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충청도병마절도사, 병조참지, 남원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68년(세조 14) 사복시판관(司僕寺判官)으로 재직 중 별시 문과에서 병과 급제하였고, 함길도경차관(咸吉道敬差官)으로 파견되어 구자(口子)의 3총통(三銃筒)을 설치하는 데 공을 세웠다.
예종이 즉위한 뒤 사헌 지평에 제수되었고, 1477년(성종 8) 의정부검상(議政府檢詳)에 제수되었다. 1481년(성종 12) 장령으로 재직시 주문사(奏聞使)로 북경(北京)에 갔다 물의를 일으킨 한명회(韓明澮)를 탄핵하는 데 앞장섰다.
1483년(성종 14) 청주목사(淸州牧使)로 있으면서 삼전(三殿: 貞憲大妃, 성종의 母 昭惠王后, 성종의 계비 貞顯王后를 일컬음.)의 온양(溫陽) 거둥과 대행대비(大行大妃: 대비가 죽은 뒤 시초를 받기 전의 칭호)의 상사(喪事)에 대한 공으로 당상에 올랐다.
그 이후 통정대부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 강릉대도호부사(江陵大都護府使), 대사간 등을 역임한 뒤, 1490년(성종 21) 가선대부(嘉善大夫) 충청도병마절도사(忠淸道兵馬節度使)에 제수되었다. 대사간 재직시 뇌물을 받았다는 거짓 모함을 받기도 했으나, 이후 병조참지, 참의, 남원부사 등을 역임했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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