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부판윤, 대사헌,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06년에 집의·사간·경연관 등을 거쳐 성천부사·순흥부사 등으로 나가 학문과 정치 및 근검에 힘썼고, 1712년 다시 사간·남학교수(南學敎授) 등을 역임하고 1716년에 사직하였다.
그 뒤 1721년(경종 1) 다시 순천부사에 제수되었고, 이듬해 수찬·응교를 거쳐 의주부윤을 지내고 이듬해 대사간·경상도관찰사·호조참의·강릉부사에 이어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판결사·공조참판 겸 도총부도총관을 거쳐, 1727년(영조 3) 예조참판·형조참판·대사헌 겸 비변사당상을 지냈다.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공을 세워 다시 형조참판 겸 승문원좨주를 역임, 1743년 지중추부사에 이르러 기로소에 들어갔고, 한성부판윤·대사헌 겸 선공감제조·공조판서를 거쳐, 1747년 숭록대부(崇祿大夫)로 승계하여 서추(西樞)에 배속되었다. 영조 때 청백리에 녹선(錄選)되었다.
저술활동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재간집(在澗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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