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함일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춘추관편수관, 성균관사성, 강진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호일사(一査)
  • 자일오(一吾)
인물/전통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563년(명종 18)
  • 사망 연도1621년(광해군 13)
  • 본관함풍(咸豊)[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
  • 주요 관직사헌부감찰|강진현감|보령현감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종덕 (고려대학교, 한학)
  • 최종수정 2026년 08월 26일
일사집 / 청삼신위광주목사소 미디어 정보

일사집 / 청삼신위광주목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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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춘추관편수관, 성균관사성, 강진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함풍(咸豐). 자는 일오(一吾), 호는 일사(一査). 아버지는 승사랑 이방필(李邦弼)이며, 어머니는 광산김씨(光山金氏)로 참봉 김유인(金有仁)의 딸이다. 문한가(文翰家)에서 태어나 가정에서 학문을 익혔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9년(선조 22)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생(館生)으로서 성균관을 지키고 떠나지 않았다. 1606년 성균관학정 겸 중학훈도(中學訓導)를 지냈으며, 이듬해 종부시주부를 거쳐 사헌부감찰 ·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610년(광해군 2) 외직으로 나가 강진현감 · 보령현감을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1614년 영해부사를 거쳐 1616년 성균관사성이 되었는데, 1618년 인목대비(仁穆大妃)가 유폐되고 이원익(李元翼) · 이항복(李恒福) 등 대신들이 귀양가는 화를 당하자 조반(朝班: 조정의 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가 강진현감으로 좌천되었다. 그곳에서 임기를 마치고 관직에서 물러나 학문을 강론하면서 후진양성에 힘썼다. 저서로는 『일사집(一査集)』1책이 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일사집(一査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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