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특별법은 1995년 12월 19일에 여야 합의에 따라 국회가 제정한 12 · 12군사반란 및 5 · 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 특별법이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라고 한다. 1980년대 이후 이어져온 5·18민주화운동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에 따라 1988년부터 국회 차원의 진상 조사와 관련 청문회가 진행되었으며, 1993년 김영삼 정부 등장 후부터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가 전개되면서 1995년 12월에 5·18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1979년 12 · 12군사반란과 1980년 5 · 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이라는 국민적 요구에 입각하여 여야 합의에 따른 국회 처리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제정되었다.
1995년 7월, 5 · 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검찰의 ‘기소권 없음’ 결정 이후 각계각층의 기소 촉구와 5 · 18 특별법 제정 촉구 운동이 전개되었다. 그에 따라 김영삼 대통령은 11월 24일 특별법 제정을 지시하였다. 이후 11월 30일에 '12 · 12 및 5 · 18 사건 특별 수사 본부'가 발족하여 3일 만에 전두환 전대통령이 구속되고 연이어 관련자들이 기소되었다.
신한국당, 국민회의, 민주당 등 여야 3당은 12월 19일에 5 · 18 특별법 단일안 제정에 합의하고 국회에 상정하였다. 이에 따라 제177회 정기 국회에서 「5 · 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재석 247석 가운데 찬성 225표, 반대 20표, 기권 2표로 가결하였다.
5 · 18 특별법 제정에 따라 12 · 12군사반란 및 5 · 18 학살의 수괴뿐 아니라 부화뇌동자에 대해서도 제5 · 제6공화국 집권 기간 중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는 내용을 포함함으로써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핵심 인물을 사법적으로 심판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5 · 18 특별법은 5 · 18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행위 또는 12 · 12군사반란 및 내란 행위를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로 대법원의 유죄 선고를 받은 사람에게 특별 재심을 청구하도록 허용함으로써 무죄 선고를 받을 수 있는 길을 터 놓았다.
특별 재심의 청구 대상을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해 발생한 헌정 질서 파괴 범죄"라고 함으로써 5 · 18광주민주화운동 현장에서 피해를 입은 시민과 김대중내란음모조작사건 관련자 등을 모두 포함시켰다. 같은 날 국회는 형법상 내란, 외환죄와 집단 살해죄, 군형법상의 반란죄 및 이적의 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적용을 영원히 배제하는 내용의 「헌정 질서 파괴 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을 만장일치로 의결하였다. 이에 따라 5 · 18 특별법의 위헌 소지를 없앰으로써 실질적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하였다. 김영삼 정부는 12월 21일 국무회의를 열고 5 · 18 특별법 공포안을 의결하였으며, 같은 날 관보에 게재함으로써 정식으로 발효되었다.
2010년 3월 24일, 2017년 7월 7일 일부 개정되었다. 이어 2021년 1월 5일 일부 개정되었는데 이로써 5 · 18광주민주화운동의 정의를 보다 명확히 하고 '반인도적 범죄 행위'에 대한 공소시효의 진행 정지를 명시하며, 5 · 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하였다.
이에 따라 1979년 12 · 12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핵심 인사들에 대한 단죄의 길이 열렸다. 또한 광주민주화운동은 발생한 지 15년 만에 역사적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