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임주(林州). 귀화인 후손으로, 고려 대도로총관(大都路摠官) 이백안(李伯顔)의 증손(曾孫)이다. 한어(漢語)에 능통하여 주로 중국사신으로 파견되었다.
1394년(태조 3) 사역원 부사(司譯院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정종이 즉위하자 통사(通事)의 직함으로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 김육(金陸)과 명나라 서울[京師]에 이르러 승습(承襲)을 허락받은 외교술로 내구마(內廐馬) 1필이 하사되었다.
판전중시사(判殿中寺事)로 재임 중 태종이 즉위하자 사은사(謝恩使) 서장관(書狀官) 안윤시(安允時)와 함께 태종의 왕위계승을 인정받고 온 공으로 안마(鞍馬)와 밭 50결, 노비 4구가 하사되었다.
1403년(태종 3)에는 전 호조전서의 신분으로 대명외교에서 수고한 공로로 내구마(內廐馬) 1필이 하사되었고, 이듬해 호조참의에 올랐다가, 1406년 주문사(奏聞使)의 임무를 성공리에 마친 뒤 태종으로부터 임주(林州)를 사향(賜鄕)받았다.
1407년 세자와 황녀의 결혼을 의논한 죄로 구금되었으나, 곧 동지총제(同知摠制)에 올라 정조(正朝)를 하례(賀禮)하기 위해 파견된 세자의 시종관(侍從官)으로 입조(入朝)하여 쌀 60석과 상포(常布) 100필이 하사되었다.
그 뒤 중군총제(中軍摠制), 검교판한성부사(檢校判漢城府事)를 거쳐, 1415년(태종 15) 경승부윤(敬承府尹) 재임 중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