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규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일제강점기
대한제국기 때, 경상북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이칭
  • 내산(奈山), 우해(于海)
  • 이칭능우(能雨)
  • 하현(夏玄)
인물/근현대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74년(고종 11)
  • 사망 연도1917년
  • 본관재령(載寧)
  • 출생지경상북도 영양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광남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대한제국기 때, 경상북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개설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하현(夏玄), 호는 우해(于海)·내산(奈山), 일명 능우(能雨). 경상북도 영양 출신. 이수단(李壽檀)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되자, 그 해 11월 청송 주왕산(周王山)에서 동지 수십 명이 모여 의병을 일으켜 적을 토벌하기로 하고 부근에 통문을 보내어 강원도·경상도의 의사들을 모집하였다. 12월 중순경 울진 불영사(佛影寺)에서 안동·청송·진보·영양의 4군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의병 500여 명을 주왕산에서 훈련시켜 1906년 2월 영양군 입암면 교리에서 의병진을 편성한 뒤 일본군과 수십 회 교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4월에는 진보의 오누저수지에서 당시 일본군의 강원도·경상도의 이른바 의병소탕부대의 책임자를 비롯, 일본군 수십명을 사살하였으며, 신돌석(申乭錫)·정용기(鄭鏞基) 등의 의병부대와 제휴, 경상북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1906년 5월 울진·죽변·왜관의 일본군을 격파하고 영양 북방의 일본군을 공격하다가 적의 역습을 받아 부상을 당하고 도포장(都砲將) 김대규(金大圭)가 전사하자 후퇴하여 의병부대를 해산하였다. 이 후 영일군 청하면 모진리 산속에 은거하여 상처를 치료하면서 후진을 양성하는 일에 힘썼으나, 총상의 여독으로 죽었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표창,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한국독립운동사』1(국사편찬원회, 1965)

  •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